본문 바로가기

《중국차》중국차의 역사

<神农时代(신농시대)>

本草》  农尝百草 日遇七十二毒而解之

《신농본초경》 신농상백초,   일우칠십이독,   덕도이해지.

"신농이 다양한 풀을 먹으니 중독이 되었으나, 도荼를 얻어 해독되었다."

 

ㅡ차는 신농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본다.

ㅡ《신농본초경》은 중국 전국시대의 책이다.

ㅡ신농은 소처럼 생겼고, 투명한 배를 가졌었다. 그는 약초 등을 직접 먹어보고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다고 한다.

ㅡ荼는 '쓴 식물'이란 뜻으로, 당나라 이전 시대에 차를 의미하는 글자였다. 본격적인 차 얘긴 당 때부터 시작한다.

ㅡ차는 [약용 → 식용 → 음용] 순으로 그 관점이 변화되었다. 약용과 식용은 순서 바뀌어도 둘 다 맞다. 차에 관한 책을 보면 이 둘은 왔다갔다한다.

 

 

<周朝(주나라)>

 《华阳国 周武王伐得巴蜀丹漆纳贡之  (公元前1046年 ~ 公元前771年)

《화양국지》 주무왕벌주 실덕파촉,   단칠도밀,  개납공지.

"주 무왕은 주왕을 토벌하여, 파촉(사천성)을 얻고, 주사(丹.광석), 칠기(漆), 차(荼)를 공물로 받았다."

 

 

<春秋(춘추전국시대)>

晏子春秋》  景公粟之炙三弋五卵茗菜而已 (公元前770 ~公元前221)

《안자춘추》 영상제경공,  식탈속지반,  자삼익오란,   명채이이.

 

ㅡ'탈속지반'은 거친 곡식으로 만든 밥을, 弋는 가금류를 뜻하며, 茗은 차를 의미하는 글자 중 하나다.

 

↑↑앞 시기까지의 차는 야생차다. 야생차는 야생에서 따 온 차를 말한다.

 

<西汉(서한)>

王褒 》  荼尽阳买荼 (公元前 202~公元8)

왕포 《동약》 팽도진구,   무양매도

"차를 끓이고 나면 다구를 깨끗이 씻어두고, 무양에서 차를 사온다."

 

ㅡ다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ㅡ《동약》은 '어린이 고용계약서' 다.

ㅡ[무양]은 사천성 팽산현에 있는 지명이다.

ㅡ왕자연이란 사람이 과부 양혜의 집에 찾아간다. 양혜에겐 남편이 살아있을 때부터 편료란 어린 종이 있었다. 술을 사오란 명령을 자기 주인을 그리워하던 편료가 거부하자 왕자연은 노하여 편료를 사 버리고자 한다. 편료가 미리 약속하여 적어두지 않은 일은 할 수 없다 하자, 왕자연은 편료의 하루 일과를 적은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이게 [동약]이다

ㅡ"물은 양자강이 가장 유명하고, 차는 몽정산이 가장 유명하다."는 말이 있다. 몽정산이 있는 곳이 사천성이다.

ㅡ아미산과 몽정산이 차 생산지로 유명하다. 몽정산의 녹차는 '몽정감로', '황차는 '몽정황아'라 한다.

 

 

<东汉(동한)>

华佗 《食论》 苦荼久食,益意思 (公元25年~220年)

화타 식론》 고도구식, 익의사.

"쓴 차를 오래 먹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晋(진나라)>

吴国君主对韦 以代酒  以茶代酒 之由 (公元265~420)

손호대 위요 밀사차도이대주’.

"술 대신에 차를 권한다."

 

ㅡ오나라 왕 손호 대의 신하 '위요'의 일화에서 나온 이야기다. 위요는 폭군 손호의 아버지의 스승이었고, 술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ㅡ중국서 술 마실 때 술이 싫으면 차를 요구한다. 차는 모든 식당마다 있다고 한다. 단, 물은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南北朝(남북조시대)>

教传入中南北朝盛行 茶一味 (公元420~589)

불교가 전입되었고, ‘선차일미’가 성행했다.

 

ㅡ남북조시대는 차가 보편화된 시기다.

ㅡ불교로 인해 백성들도 차를 마시기 시작했으므로, 스님이 차를 먼저 시작했다고 봐도 된다.

ㅡ스님들이 밤에 참선하며 졸릴 때, 차를 마시면 덜 피곤하고 덜 졸리다. 참선 시 필요한 영양성분 보충의 의미도 있다.

ㅡ절 근처서 차나무를 많이 심는다.

 

 

<당나라 이전의 차>

한글 한자 처음 언급된 곳
《诗经》(시경)
《尔雅》(이아)
《晏子春秋》(안자춘추)
《方言》(방언)
《凡将篇》(범장편)

ㅡ위 표현들은 《시경》에서 통일된다. 차를 공부함에 있어 중요하니 기억해 두도록 하자. 참고로 중국인들도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는 표현들이다.

ㅡ요새 중국에서 《시경》이 인기가 많다 한다. 아이 이름을 여기서 많이 딴다고.

 

 

<당나라 (公元618~907)> :  자차법 (煮茶法)

ㅡ자차법은 차를 끓여서 마시는 방식으로, 전차법과 유사하다.

자차법 전차법
막 끓인다. 1. 차를 굽는다.
2. 끓인 상태의 물에 가루차를 넣고 끓인다.
찬 물에도 가능하며, 전차법에 상대적으로 큰 개념이다. 찬 물에 차를 넣지 않는다. 자차법에 비해 좀 더 정교한 개념이다. 자차법 안에 전차법이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ㅡ다성(차 성인): 육우 (). 자는 홍점 (鸿渐), 출생지는 호북성이다. 육우 선생은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 《다경》을 집필한 인물이다. 차를 공부한다면 《다경》은 한 번쯤 꼭 읽어보자.

ㅡ어릴 때 이름을 '자', 성장한 이후의 이름을 '호'라 한다.

ㅡ'육'은 대륙, '우'는 깃털이란 의미의 한자다. '홍점'은 큰 새란 뜻이다.

ㅡ육우 선생은 장애와 못생긴 외모로 부모에게 버림받고, 절에서 스님에게 이름을 받고 자란다. 십대 때 가출해 유랑극단에 들어가 전국을 도는데, 이 때 각 지역의 차를 연구한다. 그리고 30대 초에 쓴 책이 《다경》이다.

ㅡ여담이지만 중국 차를 고려 홍삼과 비교하는 대목이 있는데, 홍삼을 안 좋게 얘기했다고 한다.

 

ㅡ당나라 시대엔 무이산의 증청단차가 가장 유명했다. 증기로 쪄서 만든 녹차가 증청녹차인데, 단차 혹은 병차의 형태였다. 단차는 찻잎에 구멍을 뚫어 엽전처럼 줄에 꿴 형태를 말하는데, 갈아서 가루로 만들어 먹는다. 한국에 이런 차의 형태가 남아있다. 반면, 현대 중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차다.

ㅡ단차는 현대의 차 우리기를 생각하면, 만들고 마시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형태의 차다.

ㅡ당시는 차를 끓여 마셨다. 그 방식으로 먹으면 차가 맛이 없어서 소금 등 조미료를 넣어 먹었는데, 육우 선생은 '좋은 차'를 그렇게 마시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ㅡ당나라 때 문성공주에 의해 차가 티베트 쪽으로 전래되었다. 티벳 지역에 시집 보내며 차를 함께 보낸 것이며, 티벳인들에게 차는 생필품이 되었다. 하루에 밥을 먹지 않더라도 차가 없으면 안 된단 말이 있을 정도.

ㅡ문성공주는 임금의 친딸은 아니었다.

ㅡ차를 마시는 풍습이 한국과 일본으로 전래되었다.

 

 

<송나라 (公元960~1279)> :  점차법(点茶法)

ㅡ중국의 음차 풍습은 당나라에서 시작하고, 송나라에서 성행하였다.

ㅡ점차법은 당송시기에 사용한 차를 우리는 방법이다. 당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증청녹차를 사용했으며, 현대에 '말차'라고 부르는 형태의 차가 이 때의 차다.

ㅡ중국서 송 다법(말차법)은 사라졌다. 일본은 송 대의 다법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으며, 한국엔 약간 남아있는 정도다.

ㅡ송나라 말차엔 차 색에 따른 등급이 있었는데, 3월 초에 딴 '아' 부분으로만 만든 흰색 차를 으뜸으로 쳤다. '아'가 막 솟을 무렵엔 폴리페놀 등의 성분이 거의 없어서 차가 흰 빛을 띠는 것이다.

ㅡ송 대의 다완은 짙은 색이 있는 것을 썼는데, 차의 흰 빛을 강조하였기 때문이었다.

 

ㅡ송 대에 용봉단차, 용단봉병을 만들었다. 이는 임금이 마셨던 차였다.

ㅡ송 말부터 소량의 산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진 단차와 병차.

ㅡ찻집, 차연회, 투차(斗茶), 차백희 등이 성행하였고, 시인들이 많이 활동하였다. 이와같은 활동은 당 대에 시작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기간이었다든 송 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막대로 긁거나 물로 말차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라떼아트...

ㅡ송 대의 4가지 차 예술로, 《점차(제다)》《분향(인센스. 향을 차와 함께 즐김)》《삽화(꽃꽂이)》《괘화(그림 거는 것)》이 있는데, 현재 일본서 잘 보존하고 있다. 현대엔 중국인들이 일본서 배워간다고.

ㅡ일본 차의 시작은 송나라다. 송 대에 일본 스님이 말차를 일본에 가져갔고, 지금까지도 유지해오고 있다. 한편, 중국은 다법이 계속 변화했다.

 

ㅡ황제 휘종(徽宗) 《대관차론(大观茶论)》을 집필했다. 《다경》과 더불어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대관차론》은 대관(연호)에 쓴 차론이란 뜻으로, 전문서다. 휘종은 문화적으로 다재다능했고, 국가 경영만 못 했다. 또한 중국 역사상 직접 책을 쓴 유일한 임금이기도 하다.

ㅡ휘종은 6대 차류 분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관차론》에선 두 챕터가 유명하다. 1). 칠(七)점주. "물은 일곱 번 나눠 부어야 차가 맛있다." 물을 한 번 부을 때마다 격불을 했다. 2). 백차. 백차는 당 대에 이미 생겼으나 흰색을 강조하던 송 대에 중요해진다. 송 대의 백차는 현대의 백차완 다른 것인데, 백화품종이라는 '흰색으로 바뀌는 품종'을 말한다. 백화품종은 지금은 대량생산 되지만 당시엔 야생종이었다.

ㅡ백화품종은 잎이 약간 흰색인 돌연변이 차다.

 

 

<원나라 (公元1271~1368)>

ㅡ병차가 점점 쇠락했고, 산차와 말차가 생산되었다.

ㅡ임금은 차를 좋아했다. 임금을 위한 차 재배 기관으로 어치원과 배차국을 무이산에 설립했다.

ㅡ사람을 등급 나눠서 단결되지 못했던 몽골은 빨리 멸망했다.

 

<명나라 (公元1368~1644)> :  포차법 (泡茶法)

ㅡ녹차 이외의 나머지 모든 차가 이 때 만들어졌다.

ㅡ현재까지도 우리가 쓰고있는 다법인 '포차법'이 개발되었다. 포차법은 말 그대로 '차를 우리는 법'이란 뜻이다.

ㅡ차엽의 발전에 있어 전성기를 맞이했다.

ㅡ명 태조 주원장은 정식으로 병차와 단차를 폐지하고, 산차를 만들도록 했다. 주원장 본인도 농민 출신이었고, 기존의 차가 일반 백성들이 만들고 먹기에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ㅡ산차는 찻잎을 그대로 따서 차를 만드는 방식이다. 따라서 그에 따른 변수가 많아졌고, 6대 차류가 발생하게 된다.

ㅡ솥에 간단히 덖어 만드는 초청녹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방법으로 차의 향이 더 좋아지게 되었다. 숯에 건조시키는 홍청녹차도 있다.

ㅡ화차, 황차, 홍차, 백차, 흑차 등 다양한 종류의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녹차와 백차를 제외하곤 '차를 만드는 데 실패해서' 우연히 만들어진 차들이다. 백차는 원래부터 있었다.

ㅡ노래져서 실패한 녹차를 "황차"라 부르다가, 후에 황차 제다법이 생겼다. 명말청초, 차 만드는 와중에 찾아 온 군인들을 피해 있다 산화되어버린 차가 홍차였다. 또, 중국 공주가 변방으로 시집가며 가져 간 산차가 미생물에 의해 새까매진 게 흑차.

ㅡ왕의 신임을 받던 내시 정화의 원정으로 차가 유럽대륙으로 전래되었다. 7번의 항해에서 포르투갈까지 갔고, 차와 도자기를 전했다. 당시 서양의 도기는 투박했던 것에 반해, 중국의 경덕진 백자엔 그림과 색까지 들어가 있었다. 후에 포르투갈 공주가 영국으로 시집가며 차를 가져갔고, 그렇게 차와 도기가 유럽에 전해졌다.

ㅡ당송시기엔 향 입힌 차를 안 좋은 것으로 평가했다.

ㅡ6대 차류는 1979년에 중국의 '진연' 교수에 의해 학술적으로 발표되며 공식적으로 정해졌다.

ㅡ주원장 아들 주권은 왕 자리를 포기한 인물로, 《차보》를 썼다. 산차를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을까를 연구하다가 사실상 '포차법'을 발견한 인물이다.

 

 

<청나라 (公元1644~1911)>

ㅡ청 대엔 무역이 특히 활발했다.

ㅡ명말청초, 오룡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ㅡ청나라 후기에 차가 쇠락하였다.

ㅡ강희제 때 벽라춘이, 그 손자인 건륭제 때 용정차가 만들어졌다.

ㅡ항일전쟁으로 위쪽에선 차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원래 흑차, 보이차를 만들던 남쪽 윈난 쪽에서 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이 때 개발한 것이 1936년의 홍차 '전홍'.

ㅡ차를 판 돈은 항일전쟁에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현대 (公元1912~)>

ㅡ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ㅡ해방 이후, 안휘성의 기문 차공장이 처음으로 열렸다.

ㅡ여담으로, 중국인은 담배를 매우 좋아한다. 결혼식 때도 신랑이 담배를 손님에게 주면 신부가 불을 붙여 준다.

ㅡ기문홍차 등 중국엔 홍차가 매우 많았지만, 전쟁으로 쇠락한 것을 아직도 회복 못 하고 있다고 한다.

ㅡ60' 엔 전통적이고 오래된 차들을 생산하고 소비했고, 60', 70'년대엔 품종개발을 많이 했다. 70'에 문화대혁명이 일어났고, 이 때에도 육종 했지만 숨어서 했다. 차, 의학 모두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교수 등 전문가들은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ㅡ70'말~80'초, 대만서 '다예'란 용어를 제안한다. 90' 중반엔 다예사 등의 국가자격이 만들어졌다. 현재는 문화적 포화상태이며, 차 관련 교육기관도 난립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추세라 한다.

ㅡ차는 1980년 이후 다시 안정화되었다.

ㅡ2005년은 중국에서 차의 고급화와 대중화가 일어나는 터닝포인트였다. 현재는 포화 상태.

 

 

 

<ETC>

 

ㅡ중국인들은 골동품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ㅡ지도의 모양으로, 중국은 닭, 대만은 다리, 일본은 먹이로 묘사되기도 한다.

ㅡ북경, 타이베이, 심양에 차 박물관이 있다.

 

ㅡ냉동실에 보관한 녹차는 냉기를 빼고 먹는게 좋다. 그래야 향을 더 충분히 즐길 수 있기에. 바로 써도 상관은 없다.

ㅡ차는 오래 되어도 상하진 않는다. 맛이 변할 뿐.

 

ㅡ문성공주가 시집간 티벳 지역은 고원지역이다. 식물도 잘 안 자라므로, 갈 거면 최대한 젊었을 때 건강한 상태에서 가 두어야 한다.

ㅡ금으로 만든 다구는 임금만 쓸 수 있었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차  (0) 2021.09.14
<차나무>  (0) 2021.09.14
[중국차/ 다예] 다예의 기본 개념 (2)  (0) 2021.09.14
[중국차/ 다예] 다예의 기본 개념  (1) 2021.09.14
[중국차/ 화차] 화차 공부 2  (0) 2021.09.14